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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Book

헤르만헤세 싯타르타

by HR rainbow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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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헤세의 싯타르타를 읽었다. 데미안과 비슷한 성장소설이지만 데미안은 청년기의 혼란스러운 자아를 말했다면, 싯타르타는 인생 전반에 걸쳐 자아실현을 위해 떠나는 기행에 가까웠다. 이 책을 다 읽고 헤르만헤세가 개인적인 시련(우울증, 두 번의 이혼)을 겪은 뒤 쓰였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헤세는 1928년 일기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쓴 산문 작품은 대부분 영혼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선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며,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없다는 것, 슬픈일과 기쁜일 등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전부 의미가 있다는 것, 넘어지고 흔들리더라도 견디면 더 단단해진다는 것,, 오래 살진 않았지만 다양한 경험 끝에 나는 이런 것들을 믿게 되었고 나 자신을 믿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시련 앞에선 한없이 쓸모없게 느껴졌고 무너져내렸다. 나는 싯타르타를 통해 헤세가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 지, 어떻게 극복했는 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의 세계와 자기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위로받았다. 
 
 
브라만의 아들인 싯타르타는 끊임없는 갈증을 느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안락한 가족의 품을 떠나 사문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보였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비우고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눈길 한번 줄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거짓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와 행복,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부패해 있었다. 세상은 쓴맛이었다. 삶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자아를 없앨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은 다시 자아로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 고타마를 만나서 깨달음을 얻는다.  

사물의 의미와 본질은 사물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사물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다. 

 
 
이제 사문을 떠난 싯타르타는 카밀라를 만나 사랑을 배운다. 그가 사문에서 배운 사색하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수 있는 점이 카밀라가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그는 그의 장점을 통해 상인의 집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벌고 쾌락, 유희, 사랑에 빠진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으나 웃음을 띠는 일은 거의 사라졌고, 불만스러운 표정, 상심한 표정, 언짢은 표정, 나태한 표정, 몰인정한 표정과 같이 부자들의 얼굴에서 흔히 나타나는 표정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걸리는 영혼의 병을 서서히 앓게 된 것이다. 

 
 
싯타르타는 카밀라가 키우던 새가 죽어 내다 버리는 꿈을 꾸게된다. 이에 싯타르타는 자신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이 가진 것 중에는 소중하거나 가치있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카밀라와 상인을 떠난다. 

그의 삶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그는 이제 빈털터리, 벌거숭이, 멍청이가 되어 다시 이 세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슬프지는 않았고, 아니, 오히려 웃고 싶은 어마어마한 충동, 자신에게 또 이 기이하고 어리석은 세상에 대고 웃고 싶은 어마어마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사문에 있을 때 강을 건너게 해주었던 뱃사공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곳에서 싯타르타는 경청하는 법과 강을 배운다. 

강물은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강의 원천에서나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그 모든 곳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또 강에는 다만 현재만 있을 뿐 과거의 그림자도 미래의 그림자도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거죠?

 
 
뱃사공을 하던 싯타르타는 사문이 된 카밀라와 그녀의 아들(싯타르타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 카밀라는 뱀에 물려 죽었고 그의 아들은 언제나 싯타르타를 떠나고 싶어했다. 싯타르타는 그런 아들일지언정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아들이 나타나고부터는, 싯타르타 자신도 완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되어 한 인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며, 그 사랑에 빠져 자신을 잃고,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들은 결국 싯타르타를 떠났으며, 싯타르타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충동과 욕망에 이끌리는 삶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모든게 숙명같이 느껴지면서도 고통은 계속해서 지속된다고 느낀다. 

아, 아직도 그의 상처는 꽃으로 피어나지 않았고, 여전히 그의 마음은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 있었으며 그의 고통에서는 아직도 명량함과 승리의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느꼈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는 바수데바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 욕구, 경청의 대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싯타르타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귀기울여 듣는 법을 깨닫는다. 

모두가 나름대로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새로운 목적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빈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알려주면서 이책은 끝난다.

예전에는 돌멩이를 돌멩이 자체로 보지 못했으나, 모든 것을 겪은 지금은 돌멩이가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그 모든 것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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